오피니언

■ 9년의 표류,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거제 남부관광단지가 멈춰 선 것은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다. 주민의 삶이 멈추고, 투자자의 신뢰가 무너지고, 지역소멸의 시계가 앞당겨지고 있다는 뜻이다.
동·남부면 주민에게 이 사업은 개발이 아니다. 고령화와 인구 유출, 상권 붕괴를 막을 마지막 생존수단이다.
그래서 주민 모두가 사업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지역 주민 전체가 한목소리로 생존권을 호소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그만큼 남부면의 현실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일부 환경단체는 주민의 절박함은 외면한 채 반대 입장만 되풀이한다. 대안도 없고 타협도 없다. 오직 반대를 위한 반대다.
환경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환경 보전이라는 명분으로 주민의 생존권을 묵살해서는 안 된다.
과학적 대안이 있고 보전 방안까지 마련된 사업을 통째로 멈춰 세운다면, 그것은 환경 보호가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가로막는 행위다.
■ 20년 전 기준이 오늘의 생태 현실과 맞는가?
대흥란은 2006년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처음 발견된 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됐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상 2급 지정은 개체수가 현저히 감소했거나 가까운 장래 멸종 우려가 있는 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당시로서는 타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 대흥란의 생태 실태는 그때와 판이하게 달라졌다.

제주 세계유산본부의 정밀조사에 따르면 제주시 우도면 ‘우도(牛島 )’ 한 곳에서만 4천5백 개체의 대형 군락지가 공식 확인됐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는 2025년 8월 19일 우도 일대의 식물상을 조사하던 중 대흥란 자생지를 발견하고 정밀조사를 실시한 결과, 4천5백여 개체가 집단으로 서식하는 대규모 군락지임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제주 본섬이 아닌 부속섬에서 대흥란 자생지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이 사실은 같은 날 연합뉴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부산 가덕도, 남해, 여수, 고흥 등 남해안 전역은 물론 지리산, 속리산, 강원도까지 전국 곳곳에서 대흥란 자생지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서식지는 넓어졌고 개체수는 수만 촉 단위로 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20년 전 기준을 재검토 없이 그대로 고수한다면, 이것은 과학 행정이 아니다.
보호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맞게 보호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생태적 희소성이 달라졌다면 지정 등급도 달라져야 한다. 멸종위기종이라는 이름표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과학적 재조사를 토대로 관찰종 또는 관리종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환경법은 생태 현실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현실은 바뀌었는데 제도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법은 보호의 도구가 아니라 갈등을 영구화하는 장벽으로 전락한다.
남부관광단지는 바로 그 제도적 경직성이 지역의 미래를 어떻게 가로막는지 보여주는 현장이다.
■ 가덕도 신 공항은 되고, 남부 관광 단지는 안 되는가?
가덕도신공항 건설 예정지에서도 대흥란의 서식이 확인됐다.
가덕도신공항 부지에는 대흥란을 비롯해 구렁이, 수달, 나팔고둥 등 다수의 멸종위기 야생생물과 해양보호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2023년 8월 31일 동식물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동백군락 이식 등 보전대책, 저소음·저진동 장비 투입, 조류보호구역 관리, 지형변화 최소화 등을 조건으로 가덕도신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동의했다.
멸종위기종이 발견됐다는 이유만으로 국책사업을 중단시키지는 않았다.
보전대책을 마련하고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조건으로 사업 추진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남부관광단지에도 같은 원칙과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가덕도신공항은 보전대책을 전제로 추진하면서 주민의 생존과 거제 관광산업의 미래가 걸린 남부관광단지는 9년 동안 멈춰 세우는 것이 과연 공정한 환경 행정인가.
국책사업에는 가능한 해법이 지역 민간투자사업에는 불가능한 해법이 될 수 없다.
환경 행정의 기준은 사업의 크기나 주체가 아니라 법과 과학, 일관성과 형평성이어야 한다.
■ 대흥란 272촉이 9년을 멈춰 세울 이유가 되는가?
환경영향평가 재조사 결과 남부관광단지 사업구역에서 확인된 대흥란은 총 727촉이다. 이 가운데 개발 사업구역에 자생하는 것은 272촉이다.
사업구역과 연결된 원형보존지에는 455촉이 군락을 이루며 안정적으로 자생하고 있다. 이처럼 대흥란을 보전할 공간은 사업부지 안에 충분히 남아 있다.
개발부지의 272촉을 원형보존지로 이식하고 해당 구역을 집중 관리하는 절충안은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
보전할 방책이 없어서 사업이 멈춘 것이 아니다. 보전 공간도, 이식 방안도, 사후관리 대책도 이미 마련돼 있는데 행정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식 시범 여부를 놓고 또다시 2년을 흘려보냈다. 그동안 272촉의 이식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시간만 소진했다면, 이는 신중한 행정이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는 행정이다.
행정의 우유부단으로 사업자는 막대한 금융비용을 떠안았고, 주민은 하루하루 희망을 잃어갔다. 지역 경제는 침체되고 민간투자자의 신뢰는 무너져 내렸다.
우면산 터널과 천성산 도롱뇽 사태는 환경 갈등의 장기화가 얼마나 큰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초래하는지 이미 보여주었다.
환경적 가치는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과학적 검증과 현실적 대안 없이 무조건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남부관광단지는 더 이상 검토의 대상이 아니다. 결단의 대상이다.

■ 합리적 해법은 이미 현장에 있다
남부관광단지가 끝내 좌초되면 그 피해는 사업 하나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거제 관광산업의 성장 동력이 꺾이고, 향후 대규모 민간투자 유치에도 치명적인 불신을 남기게 된다.
투자자는 수익성만 보지 않는다. 행정의 신뢰, 인허가의 예측 가능성, 지역사회의 합의 가능성을 함께 본다.
주민 모두가 찬성하고 보전 대안까지 마련된 사업이 이렇게 표류한다면, 어느 기업도 다시는 거제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발과 보전을 양자택일로 몰아가는 소모적 논쟁이 아니다. 환경은 지키고 사업은 살리는 현실적 결론이다.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첫째, 환경부와 관계 기관은 전국적 서식지 확대와 개체수 증가를 객관적으로 재조사해야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대흥란의 지정 등급을 멸종위기종에서 관찰종 또는 관리종으로 조정하는 절차에 즉시 착수해야 한다.
지정 당시의 조건이 달라졌다면 제도도 달라져야 한다. 과학적 사실이 행정적 관성에 밀려서는 안 된다.
둘째, 개발부지 내 272촉을 사업구역과 연결된 원형보존지로 이식해야 한다. 이미 455촉이 안정적으로 자생하는 만큼 이곳을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이식 개체의 생존율과 번식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면 된다.
필요하다면 전문기관, 환경단체, 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모니터링 기구도 만들 수 있다.
■ 결단하지 않는 행정은 지역 부흥을 소멸시킨다
자연 보전과 지역 개발은 상생하며 나아갈 수 있다. 과학과 기술, 책임 있는 관리가 함께 이루어질 때 자연을 지키면서 지역의 앞날도 열 수 있다.
주민은 9년을 기다렸다. 사업자는 막대한 금융비용을 감내했다. 지역사회는 수없이 대화와 결단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행정이 또다시 책임 있는 결정을 미룬다면, 그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책임의 포기다.
환경 보호라는 이름으로 과학적 대안과 주민의 생존권을 외면하는 것은 진정한 환경 행정이 아니다.
경남도와 낙동강유역환경청, 거제시는 일부의 반대에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법과 과학적 데이터, 주민의 생존권과 지역의 미래를 함께 놓고 결단해야 한다.
지금 거제에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조사도, 또 한 번의 검토도 아니다. 9년 동안 멈춰 선 남부관광단지를 다시 움직일 책임 있는 결단이다.
행정이 결단하지 않으면 사업만 멈추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미래가 멈춘다.
이슈앤경남 sngho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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